우리마을유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북지리(北旨里)
상세내용
용각산계에서 뻗어 나온 한 산계가 어쩌면 이렇게도 두텁게 넓은 곳을 차지할 수 있을까 감탄하게 된다. 그 중에도 매전면의 덕산(德山)에서 하평(下坪)을 거친 산마루는 효양산이란 험준한 산의 등허리가 높다랗게 이 마을을 안고 있다. 그러나 산의 자비(慈悲)성은 간 곳 없고 급한 경사가 된 맨 끝에 층층이 집들이 포개듯이 들어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마을 앞을 용산리에서 달려온 구릉이 눈 아래로 보이나 그래도 경사로 인해 흘러 빠지는 지령(地靈)을 막아주는 고마운 산릉이기도 하다. 이 마을의 택리는 그 어느 마을보다 앞서고 있다. 서기 1350년경에 영일인 정환주 공이 영천에서 입향하여 후손의 번영할 곳을 택리 코자 이 곳을 정했다는 것인데 아마도 주위 산세를 바탕으로한 풍수지리에 따른 것이라 생각된다.
북지(北旨)
한자로 표기한 동명이고 애당초는 북마을이 북말로 다시 금이 변하여 북마리등으로 불리다가 들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북지라고 한 것이다.
무심암(無心岩)
북지(北旨) 마을 앞으로 흐르는 동창천변의 별바위 모퉁이에 있는 바위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 부부가 난리가 끝나고 평화가 되면 이 바위에서 만나자는 언약을 하고 각자 피난길에 올랐다가 전쟁이 끝나자 부인은 이 바위에서 기다렸으나 끝내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지혈(指血)로 무심(無心) 이라고 혈서를 남기고 투신 자살한 데서 유래한 바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