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東山里)
상세내용
대왕(大王)산에서 연봉들이 분기되어 둔치령(嶺)을 이루고 다시 학일산(鶴日山)에서 통내산(筒內山)으로 태산 준봉들이 수 없이 뻗어온 가운데 높고 낮은 산등이 무엇이 그렇게도 급했던지 동창천에 가로막혀 천변을 절벽으로 버티면서 산기슭에 겨우 운신할 정도의 비탈을 구성해 놓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춘천(春川-管下川)을 따라 저 멀리 선의산(仙義山)에서 용각산으로 다시 효양(孝養)산이 험상궂게 위엄을 뽐내면서 대하고 있다. 이런 협곡 사이로 관하천을 합류시킨 동창천이 흐르고 있어 산수의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이서국에서 솔이산현으로 다시 소산현 소재지로 고려시대부터는 매전역으로 군림했던 교통의 요충지가 약 2000년의 시공을 공동화가 되었는지 심히 의문스럽다. 인위적인지 자연적인지 몰라도 문헌 없는 시공이 너무나 길기만 하기 때문이다. 1리에는 1500년대에 밀양 박씨가 입촌했다는 것이다. 이것도 구전일 뿐이다. 매전역이 설치되어 있었을 때인데도 어떤 성씨의 주민이 살았는지 분명치 않다. 2리인 구(舊) 동창의 봉산리(奉山里)에도 1리의 박씨와 동대인 1590년경에 김해인 김귀천 공이 입주했다. 또한 매전에도 김해인 김명한 공이 창촌(創村)했다하나 창동(創洞)이 아닌 입촌(入村)이다.
구동창(舊東倉)
중종 15년(1520년)에 삼족당(三足堂) 김대유 공과 소요당(逍遙堂) 박하담 공의 주도로 사창(社倉)을 설치하여 동헌(郡廳 華陽邑 東上里)의 동쪽이라고 동창(東倉)이라 불렀던 것이 마을 이름으로 변했던 것이다. 사창이 들어선 70여년 후에 김 공이 입촌하였는데 당시에 주민들이 없는 곳에는 사창을 설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규명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사창이 있던 자리가 현재는 밭이 되어 창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동창(舊東倉)을 봉산리(奉山里)라 부른다. 이는 마을 뒷산이 험준하여 마을에 무슨 피해가 있을까봐 김 공이 산을 받든다는(奉)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이 산을 효양(孝養)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후부터 이 마을에는 효자 효부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산명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신기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매전(買田), 매전(梅田)
김명한 공이 택리하고 마을 주변을 살펴보니 매화낙지형국(梅花落地形局)이라 매전(梅田)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으나 각종 지리지에 매전(買田)으로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볼 때 김 공이 매전(梅田)으로 동명을 정했다는 설이 신뢰성이 있다. 또 1914년 행정구역 조정시의 동명에 매전(梅田)리라고 기록되고 있는데 그 때 매전(買田)을 매전(梅田)으로 개명을 했다는 설이 있다.
새터, 신기(新基)
봉산리(奉山里-구동창) 서쪽에 새로 터를 잡아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라 하고 표기는 신기(新基)라 했다. 동창은 매전면 소재지다. 사창(社倉)을 동창(東倉)이라 합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산(東山)리는 신동창, 구동창, 매전동을 합친 동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