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溫幕里)
상세내용
용각산에서 분기된 연봉들이 산동 산서로 분계령을 이루면서 남주(南走)하다 중산봉을 거쳐 600고지의 용당산이 되고 다시 크고 작은 여러 봉우리들을 사방으로 거느리면서 자미구릉을 형성케 하여 마을을 포근하게 품고 있다. 동창천의 덕(德)으로 온막들은 면내 제일의 곡창이다. 비룡계곡 하단부에 취락한 여건 좋은 반산촌이요 반농촌이라 할 수 있다. 짙은 유풍이 풍기고 예를 기조로한 종족마을이다. 자미산(紫嵋山)릉의 남향 상부 지점에 신라 고찰 터가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마을이 취락된 시대는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도 1600년경 입촌한 철성인 이 담 공이 터전을 잡고 마을의 강성을 도보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명대(光明臺), 명대(明臺)
이 담 공이 마을의 발전을 위해 항상 밝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오늘날 적중된 것으로 선견지명의 동명이라 생각된다.
원전(院前)
지금부터 약 200여년 전인 1782년에 명계서원(明溪書院)이 건립되고 마을이 형성되어 원전이라 불렀다.
온막(溫幕)
경사를 따라 오르막이 있다고 올막이 변화하여 온막(溫幕)으로 미화 표기되었다는 설과 자미산(紫嵋山)릉 용담산 비탈이 막을 두른 것처럼 마을을 감고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다.
당골(當谷)
당나무가 있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용송(龍松)
당골에 있었던 소나무다. 임란 공신인 식성군(息城君) 이운룡 장군의 태생지에 이 장군이 심은 소나무가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둥지를 감아 돌면서 자랐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약 400여년된 이 고목이 고사되고 말았다. 부근의 산을 임금산, 들을 임금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공신에게 하사된 토지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