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제목금천면 임당리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林糖里)

상세내용

900고지의 억산(億山) 산괴가 수많은 봉우리와 등성을 거느리면서 운문산과 마을 뒤에서 마주 손을 잡아 중천 옹립한 거산(巨山)이 베틀바위산괴와도 합쳐져 동창천변을 따라 일부만 신지리(新旨里)로 이어지고 있는 낮은 구릉이다. 북에는 호산(虎山)이 늠름하게 버티고 서 있다. 높은 산에서 생긴 계곡 또한 경사가 급하게 마을을 향하여 내리닫고 있다. 약 500여년 전에 벌써 한 세도가가 이 마을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그 후인 서기 1550년경에 창녕 조씨도 정주한 후 큰 동네로 번창해 왔다. 2리에는 1리보다 약 100여년후에 창녕 조씨가 입촌했다 하는데 1리에서 분가한 조씨인지 전혀 관련이 없는 조씨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임당(林塘), 임호(林湖), 숲당

호산(虎山)과 용두소(龍頭沼)와의 사이에 있는 마을로 범을 불러들이고 용을 머물게해야 된다는 풍수설을 따라 마을 앞 냇가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어 마을에 범을 부르고 못을 파서 용을 머물게 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고 보니 마을은 숲에 가리우게 되어 숲(林)과 지당(池塘)을 표현한 것이 임당(林塘), 임호(林湖)라고 붙여진 것이다.

명포(明浦)

양지바르고 냇가에 위치한 탓으로 이곳 지형이 포구 같아서 양지 바른 밝(明)은 곳이고 포구와 비슷하다 하여 명포라고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일설에는 조선조 중엽부터 범선(帆船)이 조곡(租穀)을 날랐다고 하나 동장천의 지층 구조상으로 과연 배가 운항된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 사료되는 바 심도 있는 규명이 있어야 겠다.

제궁(齊宮)실, 새각단

밀양 박씨의 삼우정(三友亭)과 강림제(講林齊)가 있는 곳이라 제궁(齊宮)실로 불렀고 한때는 300가구에 이르러 큰각단, 새각단이라 부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