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제목이서면 가금리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가금리(佳琴里)

상세내용

칠엽리, 대전리를 거쳐 내려 뻗은 태봉(胎封)이 갈라져 낙맥등(落脈嶝)이 선인산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이 동향 또는 남면이라 밝은 마을들이다. 청도천이 휩쓸고 간 자리는 들을 이루고, 산을 등진 취락구조는 여느 마을과 같고 하천변이라 지대가 낮다. 오금(梧琴)리에는 1400년경에 창녕인 조응기 공이 입주하여 마을의 터전을 다졌고, 뒤이어 철성 이씨가 입촌하여 오늘의 동리로 이어지고 있다.

오금(梧琴)
부근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부엉이가 날아와 우는소리가 마치 거문고 소리와 같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혹은 마을 뒷산인 선인산에 오동나무 숲이 울창해서 선인들이 거문고를 타면서 노닐던 것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다같이 오동나무와 관련이 있다.

신평(新坪-새들)
청도천변 하천을 농토로 만들어 새로운 들이 되었다고 불리어진 마을 이름이다. 그러나 그 이전은 가촌(佳村)이라 불렀다.

고암(鼓岩-고들때기, 고울때기, 고암)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의 형상이 흡사 북을 치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이 마을의 천변에는 조선시대 시장이 있었으나 일제초 현재의 풍각면 송서시장으로 이전 되었다.

이곡(梨谷-배나무실, 배남)
배나무가 많아서 불리던 이름이나 인가가 없다.

양산(兩山)다리
양쪽 산에 걸쳐놓은 엄청난 크기의 돌다리인데 어떻게 인력으로 운반하여 다리를 만들었는지 믿기 어려워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