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경북 청도군 이서면 구라리(九羅里)
상세내용
태봉산 자락이 용이 되어 칠엽리와 수야리를 분리시키면서 다시 태봉지(胎封池)를 낳게 하면서 갈라져 하나는 가금리에서 멈추고 하나는 구라리에서 멈추면서 동으로 돌아 와룡봉등(臥龍峰嶝)이 되어 서원리에서 끝이 나 있다. 마을 앞으로는 청도천이 회류하여 마을을 돌아 흐르며 멀리 남산의 빼어난 봉우리들이 유유히 서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 마을은 기성반씨(岐城潘氏)의 집성촌답게 1500년대 중엽에 기성인 반 예(潘汭) 공이 입촌하여 유풍을 진작시켰다. 약100여년후 철성인 이광세 공도 입주 하여 반, 이문이 명실공히 마을의 지주가 되어 있다.
구라(九羅)
늑평(勒坪)이라고 불렀으며 또 한가지는 밀풍이라는 설도 있으나 이는 고증이 없다. 늑평이란 옛날 어느 장군이 뒷산에 말안장을 묻었다는 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라 한다. 구라라는 동명은 19세기경의 동명이 아닌가 싶다. 남산조양(南山朝陽)은 청도 팔경의 하나로 이 마을에서 바라보면 녹거천로(鹿車釧路)의 비경으로 조양이 남산 연봉을 비추는 황홀한 광경이 골마다 비단같이 아름다워서 동명으로 한 것이라고 보아진다. 구(九)자는 아홉개의 골짜기가 아니고 여러개의 골짜기,
즉 많은 골짜기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며 선비의 글 자랑에서 나온 동명이라고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