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상세내용
높고 묵중한 비슬산 봉우리가 크게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동쪽에서 다른 하나는 서쪽에서 각북천을 두고 2봉(峰) 1천(川)이 서로 질세라 남으로 달려 골 안의 들 가운데 산비탈에 취락이 형성된 마을이다. 율정(栗亭)에는 화전등(花田嶝), 질미산(侄眉山), 계봉산(鷄峰山), 사미정산(四美亭山) 등이 높게 낮게 솟아 있고 맞은편의 황새봉이 사람 모양으로 솟아 있다. 두 마리 용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약동하면서 내닫고 있는 것 같다. 미증유의 대혼란을 야기한 임란의 암운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 1580년경에 남평인 문장형 공이 입촌하여 동리의 융성에 전력하였다는 것이다. 율정에는 임란이 끝난 후인 1626년경에 의흥인 예인상 공이 입주하고 후손의 번창을 위하여 마을의 기초를 다지는데 최선을 다하여 인(仁), 예(禮)를 수범하면서 동풍진작에 노력을 다했다는 것이다.
방지(芳旨)
마을 앞의 숲이 둥글고 꽃모양 같이 아름답다고 붙여진 동명이라는 설과 아름다운 반송(盤松)이 있어서 붙여졌다는 설인데 여기에서 동명의 대상이 된 "숲과 반송"은 동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율정(栗亭)
동과 서에 율곡산(栗谷山)과 노인봉(老人峰)이 주변의 경관을 한층 증폭시켜주고 하천변에는 많은 밤나무가 잘 가꾸어지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풍산(豊山)
가락국 풍산현청(豊山縣廳)이 있던 자리라는 설이 있으나 연대적으로나 각종 지리지의 기재 사항을 규명해 보아도 너무나 차이가 있어 믿을 수가 없다. 토지가 비옥하여 풍년이 든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인데 재고의 필요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풍수지리설로 해석하는 것이 타장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