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상세내용
본 면에서는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혈티령 중턱에 위치하여 덕촌에서 바라보면 반공유인가(半空有人家)의 표현이 절로 실감이 난다. 이 마을로 가는 길옆에 200여년 전에 세워진 용천사(湧泉寺)의 길을 닦는데 공이 많은 분들의 공덕비문이 있다. 여기에 용천사까지의 길을 촉도(蜀道)의 험난함에 비유하는 바 이 길은 바위투성이의 길이라 하였다. 고산(高山)리에는 진주인 유창근 공이 1300년경에 입주했다는 설과 고씨 3가구가 먼저 입주했다는 두 설이 있다. 오이리(梧耳里)는 1500년경에 현풍인 곽계철 공이 현풍에서 이거했다는 것이다. 산촌중에서 산촌인데도 상당히 오래 전부터 마을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삼천리(三泉里)(삼청리-三淸里)에는 철성 이씨가 약100여년 뒤에 (오이동 보다) 입주했다는 것이다. 경주 김씨도 같은 해라한다. 오산리는 오이(梧耳), 고산(高山), 삼청(三淸), 비지리(飛地里)가 합쳐져서 이룩된 동네 이름이다.
고산(高山), 고미(高尾), 귀미
높은 비슬산 기슭에 자리 잡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삼청(三淸), 삼천(三泉)
마을 동, 서, 남에 3개의 샘이 있다고 삼천(三泉) 또는 세곳에 물이 하도 맑다고 삼청(三淸)이라 부른다.
오리(梧里), 오이(梧耳)
옛날부터 오동나무가 많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지금도 오동나무가 많다.
오산리가 태산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이면서 비교적 오래된 것은 식수와 농사 용수가 풍부한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 한가지는 용천사의 사전(寺田) 등으로 인해 농토 경작이 가능한데서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경지가 심한 계단식이나 용수가 풍부하여 보의 구실을 톡톡히 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