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제목각북면 남산리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

상세내용

통점령(通店嶺), 원계령, 혈티령 등 600고지를 거느리고 있는 비슬산계의 봉우리들이 즐비하게 이 마을의 3면을 에워싸고 있다. 동저서고의 지대로 고지대인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소리(小里)는 냇가에 취락되어 있기도 하다. 하천은 산골의 시내답게 홍수 때마다 급류로 하상이나 방둑을 멋대로 하면서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게 하는 것이 예사로 홍수 전후의 하상은 금석지감(今昔之感)을 주면서 산 계곡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해준다. 소리에는 밀성인 박원영 공이 1579년에 입촌하여 예(禮)를 숭상하는 동풍 확립에 노력했고, 150여 년 후에는 경주인 이원세 공도 입주했다. 남산(南山)에는 소리의 박 공보다 약 10여 년 후인 1587년에 밀성인 박수춘 공이 터를 다지고 예숭(禮崇)의 동풍을 동민들의 생활 속에 심었다. 부곡(釜谷)에는 임란의 여진이 가시지도 않은 1597년에 평택인 임 붕 공이 마을을 열고 터전을 닦았다. 

소리(小里), 소말
박원영 공이 처음 입주하여 소나무 숲 속에 고고히 안락하면서 홀로 산다고 작은 마을 즉 소촌(小村)이라 하다가 소마을을 소말로 다시 소리(小里)로 표기한 것으로 마을을 말로, 촌(村)을 리(里)로 바꾼 것이다. 그러다가 뒤에 정착한 이원세 공이 주위의 산세를 살펴보니 음양상 음산(陰山)과 양산(陽山)의 형세가 상통하므로 마을이 번창할 것이라 남양(南陽)이라 개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산(南山)
박수춘 공이 마을 남쪽의 산세가 좋으므로 남산이라고 동명을 정했다.

가마말, 부곡(釜谷)
처음 정착한 임 붕 공이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마을 형국이 가마솥형이라고 가마말이라고 하는 설과 마을 앞에 지하수가 솟아서 가마솥에다 밥을 지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낙성(樂盛)
사방의 자연을 자세히 보니 명산인 비슬산 아래에 자리 잡아 앞으로는 살기 좋은 마을로 동민들이 즐겁게 살 것이라고 붙여진 동명이라 한다.

남산산성(南山山城-성마루성)
임란이 일어나자 동민들이 자발적으로 축성한 산성이다. 규모는 상세치 않으나 성벽이 상존(尙存)하고 있다.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곽재우 장군이 비슬산에 포진하였을 때 이 산성은 각북(角北), 장기(長基), 두 골을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적의 정찰 겸 신호등의 소임을 맡은 것이라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