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
상세내용
평지에 취락한 동리로 마을 앞뒤로 각각 청도천과 각북천이 흐르고 이에 녹명천, 성곡(聖谷)천 등 하천이 합류하여 마치 마을의 모양이 삼각주를 방불케 한다. 남산, 화악산, 비슬산(毖瑟山), 삼성산(三聖山) 등의 지맥들이 청도천, 성곡천, 녹명천 등으로 합류지가 되어 마을을 멀리에서부터 가까이까지 둘러싸고 있다. 깊숙한 각북, 안산, 대산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1리의 택리를 알 수 있는 연대는 겨우 1500년대다. 창원 황씨, 능주 구씨, 김해 김씨, 진주 강씨 등이 속속 입촌하여 정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근에는 신라 시대의 천장사지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 남아 있는데 16세기 이후만 알뿐이니 아쉽기만 하다. 2리에는 1리에서 옮겨온 성주인 배상범 공이 옮겨온 연대가 1770년경이다. 이곳은 밀양, 대구, 청도로 편입이 반복된 지역이다.
송서(松西)
송서 이전에 어떤 촌명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송서(松西)라는 동명의 유래도 확연치 않아 일설에는 마을 삼면이 하천으로 둘러싸여 있어 물에는 배가 있어야 하고 배를 만드는데는 소나무라야 되므로 송서라고 동명을 붙였다는 것인데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은 감이 있다. 그러나 풍각(豊角-벙불)이란 인의(仁義)의 고을, 대성(大成)의 한 모퉁이라는데서 송죽이 지닌 상청의 푸르름과 같이 발전하는 마을이 되고자 송(松)자와 청도의 서쪽이라고 송서(松西)라고 동명을
정했음도 추리해 볼 수도 있다.
탑동(塔洞)
신라시대 절터에 남아 있어서 탑이 있는 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상업, 교통의 중심지답게 시장 형성으로 인한 주민의 이주가 많았기에 다성(多姓)씨로 형성된 것이다. 천정(天井)사지에는 풍각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신라가 가야를 정벌하여 가락군(駕洛郡)을 설치한 것이 532년(법흥왕 19년)이다. 천정사(天井寺)를 정전사(停戰寺)라는 이름으로 이때 불려졌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