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제목풍각면 금곡리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

상세내용

갑을령(甲乙領)에서 마치(馬峙)로 다시 비슬산으로 산, 산능선, 높은 고개에 안겨 있는 마을이다. 왕녀봉(王女峰)이 어루만져 주고 복룡(伏龍)산은 끊임없이 정기를 불어 넣어 산촌으로는 언제나 생기가 넘치는 마을이다. 6.25사변시는 창녕 전투의 보급로로 혁혁한 공헌을 한 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서 마치령에 이어지고 있다. 밀양 변씨가 먼저 들어온 연대가 1500년대 초라고 한다. 그러나 충주에서 입촌하게 된 평택인 임계량 공은 1600년 초라 하니 약 100여 년 후이다. 마을에 정착한 임 공은 후손의 융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수신(修身)에 힘쓰고 행신(行身)에 최선을 다하면서 동기(洞氣)를 굳혀서 임씨의 금곡리를 이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쇠골 즉 금동(金洞), 금곡(金谷)동
마을 주변의 산과 들 중에서 동네의 주산(主山)이 오행(五行)중 금생(金生)에 해당한다고 쇠골이라 불러오다가 임계량 공이 금동(金洞)으로 개칭하였고 다시 동폐합시에 금곡리로 정해졌다.

주막(酒幕-모퉁이)
동리 입구로 창녕으로 가는 길목에 숲이 있고 행인들이 많아 주막이 있던 곳이라 주막으로 불렀고, 또한 마을 한모퉁이에 위치하여  있다고 자연적인 모퉁이라고도 불렀다. 이 주막에서 창녕 방면의 마령(馬領)을 넘기 위해서 일배부일배(一杯復一杯) 했을 것이고 창녕에서 넘어온 행인들도 역시 한 잔씩 목을 적시고 시장한 배도 채웠을 것이다. 동리 입구의 숲은 인위적인 것으로 금동, 화산동의 지기의 유실을 막고 역원제(驛院制) 하에서 역과 원의 리정(里程) 표시로 10리마다 소거(小渠)를 30리마다 대거(大渠)를 구축하여 나무를 심었을 때, 심은 것으로 현재 군내에 산재하고 있는 노수목의 대부분 이정 표시로 심은 나무다.

장안곡(長安谷)과 고려실곡
옥녀봉의 형상이 선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 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옥녀봉을 짝 지어주는 것이 마을을 보호하고 발전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풍수설에 입각하여 마을 앞 골이 거문고 줄을 고르는 형태로 보고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