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제목풍각면 봉기리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봉기리

상세내용

비슬산의 준봉들이 직령(直領)으로 또는 분봉(分蜂)되어 솟아졌다가는 낮아지고 낮아졌다가는 솟는 등 무수한 자태를 과시하면서 마을을 안고 있다. 노인봉이 현리(縣里)를 마련해 주고 다시 낚시 산등이 되었으나 멈추고 있는 것이 아니고 붕어산등을 유혹하여 항상 살아있는 형상이며 학산(鶴山)은 부드럽게 마을에 지기(地氣)를 뿜어주고 있다. 이 두 산등성이 사이의 골안은 깊숙하게 성곡(聖谷), 수월(水月)까지 뚫어 있다. 마을의 정기가 성곡천으로 유실되는 것을 내마산(萊馬山)이 멀리서 잘 막고 있다. 동리와 근접한 곳에 무수한 신라 가야 토기들이 과수원 조성으로 파편만 뒹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택리는 말할 것 없이 오래된 것이나 알 수 있는 것은 겨우 300여 년 전 일이다. 봉기는 원래 현내면으로 현리동 일부와 흑석동 일부를 합친 동리다.

봉기(鳳岐)
마을 뒷산의 형상이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부곡(部曲-가마골)

마을의 서편에 있는 산의 형상이 가마솥 모양과 흡사한데서 붙여진 이름인데 가마솥에는 물이 있어야 좋다는 풍수설대로 못을 축조한 것이 현재의 부곡지다.

신촌(新村-새각단)
본 마을에서 떨어져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현재는 본 마을과 이어져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고정(高亭-높은 정)
성곡천과 흑석천이 합류하여 청도천으로 유입되는 합류 지점의 높은 제방에 자리하여 부근에서는 지대가 제일 높은 곳이라 하여 불리어진 이름이다.

신봉(新鳳)
약 50여 년 전에 이서면 가금리 천변에서 시장이 송서리로 이전되자 급속히 취락되어 주민들이 증가되었다. 그러자 본동에서 너무 떨어졌고 행정(行政)동으로서도 손색이 없자 2리로 분동이 되면서 새 봉기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신촌회목(新村檜木)
마을 북쪽과 중앙에 몇 그루의 회나무가 있다. 수 백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나무다. 마을 수호신목으로 동제를 지낸다. 유산역(幽山驛)은 성현역(省峴驛) 관할 하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