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
상세내용
화악산의 지봉들이 줄줄이 이어져 양 줄기가 서로 경주나 하듯이 옥산(玉山)천을 끼고 달리다 동쪽 봉우리 아래 등선에는 2리가, 서쪽 줄기 기슭에는 1리가 자리하면서 산골짜기 계천이 분동을 시켜놓고 있다. 이곳 역시 남고북저이나 그리 심한 비탈은 아니고, 2동은 사촌천이 옥산천과 합류하는 지점인 만큼 유독 돌이 많은 전답이나 1리는 나름대로 비옥한 토질의 토지가 마을 앞에 있다.
2리인 녹갈리에는 1630년경에 현풍에서 성주인 곽 탄 공이 입촌하여 성주 곽씨촌을 이루게 되었다.
녹갈(鹿渴)
옛날 사슴이 물을 먹고 간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나 이보다 사슴이 흔할 때 사슴들이 먹는 우물이 있으므로 기인된 동명이라는 것이 타당성 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튼 녹갈이라 해도 칡이 많아 사슴들이 모여든 데서도 유래를 찾을 수도 있다. 어떻든 사슴으로 인한 동명임은 분명하다. 녹명이라는 동명도 사슴이 많이 모여들므로 우는 사슴도 있었을 것이니 사슴으로 연유된 동명임은 틀림없을 것으로 본다.
구만(九萬)
1리인 구만리에는 서기 1700년 초에 성주인 도진칠 공이 대구 서촌(西村)에서 입주하여 성주 도씨 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구만(救萬)이라는 설도 있으나 조선초 시대의 각종 지리지에는 구만(九萬)으로 표기되어 있다. 구전으로는 임란시 부근 동민들이 운정산에 피난차 모여 들어 산성을 축조하여 왜군과 일전을 각오했으나 왜병이 오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구(救)했다고 구만(救萬)으로 동명을 정했다는데 어찌하여 상당수의 관 기록에 구(九)자로 표기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또 지방행정구분개정시 녹갈(鹿渴)과 구만동(九萬洞)을 합동할 때 녹명리(鹿鳴里)라고 동명을 정했는지도 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