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

고운영정(孤雲影幀)

주소경북 청도군 각남면 구곡길 125-1
상세내용

◆ 고 운 영 정(孤雲影幀) ◆

 

지정번호 :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66호
지 정 일 : 1983. 6. 20 
소 재 지 : 경북 청도군 각남면 구곡길 125-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경주최씨종중


최치원(崔致遠857∼?)은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학자로서 경문왕(景文王) 9년(869년)에 당(唐)나라에 유학하고 그곳에서 17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활약했으며 879년(憲康王5년)에 지은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은 특히 유명하게 전해지고 있다.
신라말 석학(碩學)인 고운 최치원선생(孤雲 崔致遠先生)의 영정(影幀)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리산 쌍계사(雙溪寺)본과 가야산 해인사(海印寺)본이 있다. 이곳 학남서원 계동사에 봉안된 영정(影幀)은 해인사 본으로 원래 해인사 나한(羅漢)의 영정(影幀) 가운데 섞여 있었던 것인데 구한말 왜적의 약탈이 두려워 최씨 문중에서 해인사 주지와 교섭하여 낮(日谷) 마을로 이봉(移奉)한 것으로 그 역사적(歷史的) 가치(價値)가 높이 평가(評價)되고 있는 영정이다.
고운 영정(孤雲 影幀)은 우리나라 도처에 봉안되어 있으나 그 대부분이 승상(僧像) 형식을 취함에 반하여 이 영정은 중국풍(中國風)의 형식을 취한다. 이 영정에서 고운(孤雲)은 사방모(四方帽)에 연거복(燕居服)을 입고 부채를 쥐고 앉아 있다. 그 양 옆에는 석류를 담은 청자 그릇을 받쳐든 동자와 파초선을 든 동녀가 시립(侍立)해 있다. 또한 화폭 왼쪽 위에는 신라 최선생 고운진영(新羅 崔先生 孤雲眞影)이라는 제기(題記)가 기록되어 있다. 화폭의 크기는 세로105cm 가로 74cm로 고식(古式)을 취하고 있으나 안면 묘사와 옷주름 처리에 나타난 선염법의 사용, 바닥에 깔린 돗자리의 형태, 등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그린 이모본(移模本)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비록 이모 본이라 하여도 우리나라 일반 사대부상을 그릴 때에는 보통 주인공 한사람의 초상(肖像)을 그리는 것을 상식으로 하나 이 초상화는 화면구성이 특이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초상화사상 크게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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