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
오졸재박한주여표비및비각(迂拙齋朴漢柱閭表碑및碑閣)
상세내용
◆ 오졸재박한주여표비및비각(迂拙齋朴漢柱閭表碑및碑閣) ◆
지정번호 : 경상북도 기념물 제104호
지 정 일 : 1995. 1. 14
소 재 지 : 경북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 178-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밀양박씨행산문중
이 비석은 오졸재(迂拙齋) 박한주(朴漢柱)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길옆 언덕배기에 거대한 화강석으로 비신(碑身), 귀부(龜趺), 이수( 首)를 모두 갖추고 있는 비석이다. 전체높이 308㎝이고 비신의 높이가 196㎝이며 귀부는 30㎝, 이수가 82㎝로 김응조(金應祖:1587∼1667)가 비문을 짓고 이관징(李觀徵)이 썼으며 인조7년(1629)에 이곳에 세웠다.
박한주선생의 자는 천지(天支)이고 호는 오졸재(迂拙齋)이며 점필재, 김종직선생의 고제(高弟)로 본관은 밀양이다. 풍각면 차산리에서 출생하여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485년(성종16)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급제하여 정언(正言), 헌납(獻納), 예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연산군의 실정을 극간(極諫)하고 노사신(盧思愼), 임사홍(任史洪)을 탄핵하다 연산군4년(1498년)왕과 훈구파에게 미움을 받아『戊午史禍』때 평안도 벽동(碧潼)에 유배되었다. 연산군10년(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서울로 압송되어 희생당한 분이다. 중종반정(中宗反正 1506년)후 도승지에 추증(追贈) 되었고 이곳 차산리 와 대구 남강서원(南岡書院), 함안 덕암서원(德巖書院)에 제향(祭享) 되고 후대 사림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와가로 내부는 모두 통칸으로 처리되어 있고 중앙에 비(碑)가 있다. 자연석 주초 위에 기둥을 두고 기둥에는 배흘림을 주었다. 주두상에는 이익공이고 인방과 장설 사이에는 원형의 화반을 끼웠으며 도리는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가구는 제형판대공(梯形板臺工)이 마룻대를 받는 5량 가이고 양측면에 충량(衝樑)을 대량 위에 걸었으며 충량 상부에는 우물반자를 설치하여 고졸함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