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의 전설

제목운문면 - 지룡산과 견훤
1.운문면 - 지룡산과 견훤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운문산 자락에 지룡산이라는 산이 있다. 이 산위에는 지금도 옛날의 산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지룡산성, 호거산성, 운문산성이라 부르고 있다.


이 지룡산성이란 이름은 후백제왕 견훤이 이 산에 살던 지렁이의 아들이라는 야설로 인해 지용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여기에 있는 산성을 지룡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룡산성은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 계기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 산성을 축조한 후백제왕 견훤이 신라의 수도였던 금성을 공략하게 되자, 신라왕이 나라를 들어 고려에 항복하게 되고 그 뒤 고려에 의해 후삼국이 통일되었던 것이다.


이 지룡산성에 얽혀있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신라후기 지금의 운문면 신원리 내포에 한 아름다운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주위 젊은이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이 처녀는 부모님을 모시고 화목하게 살고 있었다. 처녀가 성숙해 지자 장래의 배필감을 생각하면서 가끔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다.

어느날 밤중, 처녀가 문을 잠그고 자고 있을 때 인기척에 놀라 깨어보니 어떤 낯선 총각이 방에 들어와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처녀는 얼마나 놀랐던지 소리도 못 지를 지경이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처녀가 말하기를 "누구시온데 이 밤중에 처녀 혼자 자는 방에 들어왔어요?" 하자 총각이 대딥하기를 "나는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살고 있으나 낭자를 주야로 사모하던 끝에 이러한 무례를 범하게 되었으니 너무 책망하지 마시오" 라고 하였다.

 

처녀는 총각의 말을 듣고 그 풍모를 자세히 쳐다보니 늠름하고 믿음직하게 생긴 미장년이었다. 처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 그날부터 두사람은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고, 처녀는 한시라도 총각을 잊지못하여 애타게 기다리게 되었다.

 

그뒤부터 매일 자정이 좀 지나면 언제나 찬바람이 일면서 그 늠름한 총각이 처녀방을 찾아들어 사랑을 나누다 첫닭이 울기전에 떠나버리곤 했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얼마간 흘렀다. 그간 부모는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곳곳에 좋은 혼처를 구해도 딸은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막무가내였다. 부모들은 딸이 사모하는 젊은이가 있나보다 하고 딸을 달래고 야단을 쳐서 추궁하였으나 처녀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여 부모들은 딸을 말을 믿었다.

 

이렇게 지나기를 수개월이 지나자 처녀는 아기를 갖게되어, 자신이 잉태한 것을 부모에게 숨기고 배를 천으로 싸매어 지냈으나 결국에는 부모가 알게 되었다. 딸을 고이 길러 좋은 혼처를 찾아 결혼시키려던 부모의 꿈은 깨어지고 말아 크게 실망하였다. 딸을 앉히고 그간 어떻게 된 연유인가를 물으니 딸은 감출 수가 없어서 지난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니 어머니는 딸의 장래와 남의 이목이 두려워서 태산같은 걱정에 쌓이게 되었다.

 

부모들은 이렇게 된 이상 하루바삐 그 총각집에 통혼을 하여 혼례를 치르기로 하고 딸에게 그 총각의 거처와 이름을 물었다. 그러나, 딸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하기를 "죄송하오나 그 총각의 거처도 이름도 모르옵니다.
앞으로 석달간만 기다려 주면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때까지는 거처와 정체를 알려고 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하니 석달간만 더 기다려 주세요"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부모들은 딸의 말을 믿고 몇 달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처녀가 아기를 잉태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쫙 퍼지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딸아이가 아기를 가졌다는 소문이 날까봐 항상 노심초사하던 어머니는 크게 당황하여, 그 총각이 말한대로 오랫동안 기다릴 수 없으니 총각의 부모를 찾아 혼사를 이루도록 그 총각이 찾아오면 딸아이에게 말하도록 하였다.

 

그날밤 처녀는 찾아온 총각에게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빨리 혼사를 치를 수 있도록 부탁했다. 그러자 그 총각이 말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