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의 전설

제목각남면 - 공부자의 우물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에는 공부자의 우물이라는 아주 오래된 우물이 하나 남아 있다.
이 마을에는 어느 시대인지는 알 수 없다는 아주 먼 옛날에 공부자라고 하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공부자는 어찌나 부자였던지 옥산리를 중심으로 사방 5리나 되는 곳에 대문이 있었다고 한다. 동문은 오늘날 함박리에서 사리(사릿골)로 넘어가는 고개 위에 있었고, 서문은 옥산리에서 풍각면 덕양리 송월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 타락고개에 있었다고 한다. 남문은 청도에서 밀양으로 넘어가던 고개인 요진재에 있었다고 한다.
 

또한 북문은 녹명리 동편 산과 죽바위를 잇는 곳에 큰 숲을 심어 북문으로 삼았다고 하며, 녹명리 쪽에서 바라보면 안이 가리어 숲 뒤쪽에 넓은 곳이 있는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 숲은 조선조 말까지 남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대부분이 논밭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렇게 큰 정원을 이루고 살던 공부자가 언제 어떻게 망해 버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옥산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공부자의 집터였음을 알려주는 우물이 지금도 남아 있다.


공부자 우물은 옥산동 서편 끝에 지금이라는 곳이 있는데, 옛날에는 이 우물을 중심으로 아주 초라한 오두막이 한 채 있었다 한다. 이 오두막 마당 끝에 공부자의 우물이 있었는데 문짝 만한 자연석을 두 개 잇대어 덮여져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7∼80년 전인 어느 해 몹시 가뭄이 들었다. 어찌나 가뭄이 심했는지 식수조차 구할 수가 없어 마을 사람들이 크게 곤란을 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마을사람들이 모여 의논을 한 결과 공부자 우물물을 식수로 사용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그 동안 마을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오던 얘기는 공부자 우물은 공부자가 어느 해 난리를 피해 피난을 가면서 값진 물건들을 우물 속에 넣고 뚜껑을 덮어 뒀다는 것이다.


공부자의 보물도 건질 겸 동네 장정들이 힘을 합쳐 공부자 우물 뚜껑을 열고 물을 퍼 올리려고 했다. 두레박을 우물 속에 담그자 쇠그릇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오면서 우물 속에서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구렁이가 한 마리 나타났다고 한다. 기겁을 한 마을 사람들이 우물 뚜껑을 다시 제자리에 덮어놓고 달아나 버렸다고 한다.


이 후로는 아직까지 그 우물의 뚜껑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며 어느 누구도 감히 우물 뚜껑을 열어 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