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의 전설

제목청도읍 - 조들과 노루목

지금의 청도읍 유호 2리(속칭 조들)에 그 옛날 조장자(趙長者)라는 글 잘하고 돈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다.
원래 조장자는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지만 틈틈이 글을 익혀 시 한 수 지을 정도였으나 인정이 많고 마음이 넓어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한다.


하루는 어떤 대사 한 사람이 찾아와서 시주를 청하기에 후하게 시주를 주고 이미 날이 저물어서 대사를 사랑방에 하룻밤 묵고 가게 하였다.
융숭한 대접을 하룻밤을 세운 대사는 떠나기에 앞서 주인에게 말하기를 「주인방이 하도 따뜻하고 인정 있게 대해 주시니 소승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으니 소승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조장자가 보기에 범상한 승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대사께서 가르쳐 주신다면 반드시 따르겠습니다.」하였다.
이에 대사는 조장자를 따라 오라고 하더니 앞산을 가리키며 「저 산 이름이 무엇이요?」하였다.
산 이름이 노루골이라고 대답을 하자 대사가 「저 산 잘록한 노루 잔등 비슷한 곳을 정면으로 볼 수 있게 대문을 바꾸어 내시고, 매년 가을철에 날을 택하여 햇곡식으로 산신제를 올리시오.
 

그러면 가정의 살림도 점차 넉넉해지고 자손도 번창할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지킬 것은 하루에 수많은 손님이 와도 친절히 모시도록 하시고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도와 주셔야 합니다. 만약 소승의 부탁을 어기시면 큰일납니다.」하고 대사는 어디론지 떠나고 말았다. 과연 그 산을 높은 산 주름에서 뻗어 큰 냇가에까지 나와 있는데 노루가 서 있는 모양 그대로였다. 조장자는 대사가 일러준 대로 일꾼들을 시켜 대문을 새로 내고, 햇곡식을 장만하여 산신제를 지냈다.
 

그 후로 점차 살림이 늘어나고 인심이 또한 좋아서 접빈객의 도리를 다하였다. 아랫사람이나 이웃에게도 항상 온정과 관용으로 대하니 모든 사람들이 숭앙하여 조장자라 불렀다. 또한 가세도 넉넉하여 마을 앞 넓은 들은 모두 조장자의 소유였고, 사랑방에는 항상 문객들로 성시를 이뤄 집안은 잔칫집 같았다.


조장자가 유복한 생활을 하다 연로하여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가족들을 모아놓고 유언하기를 「우리 집안이 번창하게 나가려면 반드시 유언대로 지켜야 한다. 첫째는 노루골 산을 잘 보호하여 흙 한 점도 손대지 말 것이며, 둘째로 우리집 대문의 위치를 바꾸지 말고, 셋째로 찾아오는 손님은 따뜻하고 친절하게 접대할 것이며, 넷째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힘겨운 일이 있어도 불평 불만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대를 이은 아들은 부친의 유언을 잘 지키며 인심을 쓰니 온 집안은 화기에 넘쳐 아무것도 부럽지 않는 생활이었다. 부인 또한 마음씨가 곱고 부지런하여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하인들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감독해서 일을 처리하여 남편인 조장자를 잘 내조하였다.
2대 조장자도 죽고, 3대 조장자대에 와서의 일이었다.


조장자는 인심도 좋았지만 그 부인 또한 마음씨가 곱고 부지런하여 인근에 칭송이 자자했다. 그러나 착하고 부지런한 이 부인에게는 한가지 흠이 있었으나 그것은 깊은 생각 없이 경솔하게 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조장자의 집안이 다복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해오던 중 하루는 점잖은 대사 한 사람이 시주를 구하러 왔다. 대사는 후한 시주를 받고 감사하여 염불을 하고 만복을 축원하니 조장자 부인이 하는 말이 「여보세요 대사님, 우리 집은 지금 복되게 살고 있으니 더 이상 복은 그만 두고 제발 손님이나 못 오게 해주세요. 하도 손님이 많이 와서 그 치송에 사람이 견딜 수 없습니다. 대사님 꼭 부탁합니다.」라고 부인이 그동안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불평 불만을 늘어놓았다.


경황없이 말하고 있는 부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대사는 「마님께서 꼭 소원이시라면 마님의 원을 풀어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손님이 많이 오는 것도 이 집의 복입니다.」하니, 부인은 「이제 아무 복도 필요없으니 꼭 제 소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대사는 「마님, 뒤에 후회를 하셔도 소용이 없으니 그대로 계시지요.」라고 했다.
부인은 「후회라니요, 소원만 들어 주신다면 뒤에 어떤 일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시주를 많이 할테니 소원이나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대사는 가까운 시일에 손님이 못 오도록 하겠으니 인부 3명만 달라는 것이었다. 부인은 반가워서 인부 3명을 대사에게 딸려 보냈다.
대사는 인부 3명과 같이 조장자집 건너편 산기슭(지금 경부선 철도가 유호동으로 넘어가는 짤룩이)에 가서 소이산의 지맥을 파헤치니 맑은 날씨인데도 갑자기 천둥이 일고 회오리 바람과 함께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그 속에서 노루가 한 마리 뛰어나와 달아났다.


그 후 조장자의 집안에는 갑작스런 병환을 비롯한 가화(家禍)가 연달아 일어나서 재산은 점점 줄어들어서 수 삼년내에 아주 망해버려 나머지 가족들은 유리걸식(流離乞食)에 나서서 모두들 조들을 떠났다 한다.


이 전설은 임진왜란 이전의 이야기 같으며 지금도 조장자 집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인물인 듯하다. 그 후 조장자가 살았던 들판의 이름을 조들이라 부르며, 대사가 산의 지맥을 자른 곳에서 노루가 나왔다 하여 「노루목」이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