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제목이서면 수야리
작성자관리자 @ 2012.03.13 17:51:35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상세내용

삼성산의 지봉이 승천하는 용처럼 힘있게 융기한 덕영릉(德嶺稜)이 뻗어 있고, 한편으로는 태봉산의 두 봉우리가 나란히 달리면서 힘을 자랑하듯 뻗은 골 안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좌청룡 우백호의 다툴 듯한 융기가 자연적인 지기가 되어 마을을 보전해 주는 듯한 취락의 요건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 1리인 수야에는 1439년에  밀양인 박 건 공이 밀양에서 이주하여 이 마을에 정주하였고, 야 40여년 후인 1479년에는 밀양인 박하담 공이 정착하여 터를 다지면서 동명을 정하고자 지형을 살펴보니 냇물이 야(也)자로 흐르므로 수야(水也)라고 부르고 박 공이 손수 은행나무를 심어 행정(杏亭)이라 하였다. 1리의 마을의 형국이 주형(主刑)이라 이 마을에는 우물이 없는 것이 특색이다.

덕령(德嶺)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신촌(新村)이라 하였다 1600년 초에 정주인 현 건 공이 입향하여 각북면 나부산 아래에 거주하였으나 그 후손들이 이 마을에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약 80여년 전에 현영락 공이 마을 뒤의 고개인 덕령을 그대로 동명으로 정했다고 한다.

귀일(歸一)
명리(明里)라 하였으나 박하징 공이 입촌하였다가 타처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귀일이라 부르게 되었다.

명곡(明谷)
동네의 방향이 동남이라 아침 햇빛이 먼저 비치는 곳이라고 "바레미"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표기로 명곡이라고 하였다.수야리는 상북면이던 조선시대에는 수야(水也), 대명(大鳴), 명곡(明谷), 중리(中里), 명리(明里), 신촌(新村) 등 여러 마을로 나눠져 있었으나 1906년 지방행정구역 변경시에 수야동으로 통합되었고 다시 현재는 4리까지 분동이 되어 있으며 자연부락 단위로는 옛 동명이 그대로 불리고 있으며 개명된 마을도 있다.

 

역동적인 민생청도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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